히사이시 조 -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함께한 25년간
블루레이 리뷰

영화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공연들이 한 두가지씩은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 뮤지션의 공연을 라이브로 직접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물론,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팬이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나 애니의 사운드트랙 공연 실황을 보고 싶다는 바램을 갖게 되기 마련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만큼이나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터라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에 수록된 곡들을 직접 라이브로 만나볼 수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까 하는 생각을 한 두번 해본 것이 아니었다. 그중 가장 보고 싶은 두 가지 공연을 꼽으라면 첫 번째로는 <카우보이 비밥> <신세기 에반게리온> <천공의 에스카플로네>등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음악을 만들었던 칸노 요코의 공연을 들 수 있을텐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몇 해전 국내에서 가졌던 내한 공연에 참석할 수 있었고,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황홀한 경험을 만끽할 수 있었다. 이날 공연으로 느낄 수 있었던 건 확실히 그냥 일반 뮤지션의 콘서트와 애니메이션 사운드 트랙 공연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가수의 노래를 직접 듣는 것과 애니메이션의 수록곡을 직접 듣는 경험은 같은 종류로 비교되기 어려울 정도로 분명 '다른' 체험이었는데, 뭐랄까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이었다.


ⓒ2009 NHK Video. All Rights Reserved


칸노 요코의 공연 보다 조금 더 보고 싶었던 공연이 있었다면 바로 스튜디오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서 항상 만나볼 수 있었던 영화음악가 히사이시 조의 공연을 꼽을 수 있겠다. 헐리웃에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 콤비가 있다면, 일본에는 미야자키 하야오와 히사이시 조 콤비를 바로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없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물론 히사이시 조는 지브리의 작품들 외에 여러 극영화들과 개인 음반 등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했었지만, 가장 빛을 발하고 가장 오랫동안 손발을 맞춰왔던 것은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런 히사이시 조가 미야자키 하야오와 함께한 25년의 세월을 정리하며 기념 공연을 가졌다는 소식은 팬으로서 당장 일본으로 날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의 반가운 소식이었으며, 지난해 NHK를 통해 방영했던 공연을 스트리밍 영상으로나마 접한 뒤 하루 빨리 블루레이나 DVD로 출시를 고대했었는데, 드디어 올해 일본 내에서 반갑게도 블루레이 포맷으로 발매가 되어 이 미칠듯한 고환율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타이틀을 구매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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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4일과 5일 양일간 무도관에서 열렸던 '히사이시 조 in 무도관 _ 지브리 아니메와 함께 걸어온 25년간' 공연 실황은 지난 해 개봉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벼랑위의 포뇨> 개봉에 촛점이 조금 더 맞춰져 있기는 하지만 '함께 걸어온 25년간'이라는 제목처럼 그 간의 작품들 속에 담긴 주옥같은 곡들을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200인조로 이뤄진 뉴 저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800명에 달하는 합창단으로 이뤄진 이번 공연에서 히사이시 조는 기존 곡들을 조금씩 편곡하여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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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공연에는 미아쟈카 하야오가 감독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모든 음악을 만나볼 수 있는데, 그 서막을 장식하는 것은 1984년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風の谷の ナウシカ)>이다. 오프닝 테마 속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 솔로를 듣는 순간 관객은 순식간에 애니메이션 세계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대규모 코러스가 함께하는 레퀴엠이 이어진 뒤 공연장 가운데를 가득 채운 스크린에서 나우시카의 한 장면이 나옴과 동시에 'The Battle Between Mehve And Corvette'이 이어진다. 이 공연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역시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과 더불어 삽입곡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그 특유의 아이들 코러스가 매력적인 레퀴엠이 이어지며, 나우시카의 엔딩곡 'The Bird Man : Ending'으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섹션은 마무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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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만나게 되는 작품은 바로 내가 10년 가까이 쓰고 있는 닉네임인 '아쉬타카'의 어원이 된 '아시타카'가 등장하는 1997년작 <모노노케 히메 (もののけ)>이다. 'The Legend Of Ashitaka'의 웅장한 사운드를 듣는 순간 숨이 멎을 듯 했다. 그 다음은 <모노노케 히메>속 장면들과 함께 합창단과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사운드가 이어지고, 마지막으로는 메인 테마곡 '모노노케 히메'가 하야시 마사코에 의해 불려진다. 하야시 마사코는 <벼랑 위의 포뇨>의 주제곡에도 참여하였는데, 개인적으로는 역시 본래 이 곡을 불렀던 요시카즈 메라가 불렀다면 더 감동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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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섹션은 1989년작 <마녀 배달부 키키 (
魔女の宅急便)>가 이어진다. 이번 공연에서는 좀 더 애잔하고 감성적인 느낌의 편곡으로 이뤄져있는데, 특히 두 번째로 만나볼 수 있는 '마음 아픈 키키' 같은 곡은 '키키가 이렇게 슬펐었나?'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공연에서 만나볼 수 있는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마녀 배달부 키키>의 경우 스크린 속 영상과 음악이 더 멋지게 조화를 이루어 감동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바이올린 솔로 역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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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 배달부 키키>의 섹션이 끝나면 이 공연의 주요 테마라고 할 수 있는 <벼랑 위의 포뇨 (
崖の上のポニョ)> 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때 쯤 되서야 히사이시 조가 처음으로 마이크를 들고 무대 앞에서서 자신과 오케스트라, 합창단을 관객에게 소개한다. <벼랑 위의 포뇨>에는 무려 8곡이 포진되어 있는데 중간 중간 보컬 곡이 포함된 관계로 크게 지루하지 않은 편이다. 첫 번째 보컬 곡은 앞서 '모노노케 히메'의 메인테마 곡을 불렀던 하야시 마사코의 '바다의 엄마 / 海のおかあさん'이다.  '파 도 타는 물고기 포뇨 / 波の魚のポニョ'에서는 브라스의 활약이 돋보이며, 두 번째 보컬 곡은 후지오카후지마키가 등장해 '후지모토 / フジモト'의 테마곡을 들려준다. 세 번째 보컬 곡은 '폭풍 속의 해바라기 집 / 嵐のひまわりの家 '인데 이 곡을 부른 '마이'는 다름 아닌 히사이시 조의 친 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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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시 대미를 장식하는 곡은 '포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포뇨 포뇨 포뇨~'하는 메인테마곡이다. 후지오카후지마키와 어린 소녀 오오하시 오조미가 부르는 이 곡은 한 번 들은 사람들은 입에서 땔 수 없을 정도로 중독성 있는 곡으로 라이브를 많이 본 이들이라면 율동마저 외우게 되는 곡이다(길을 가다 이 곡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율동이 나와 당황스러웠던 적도 -_-;;). 참고로 오오하시 오조미와 함께 이 곡을 부른 후지오카후지마키를 그냥 '아저씨들'로 알고 있는 이들이 상당히 많은데 이들은 이전 70년대에 방송금지곡을 연달아 발표하며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밴드 '마리챤즈'의 멤버인데, 이들이 이렇게 어린 꼬마와 '포뇨 포뇨~'하는 곡을 부르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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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이어지는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또 하나의 대표작인 1986년작 <천공의 성 라퓨타 (天空の城ラピュタ)>이다. 고적대가 객석 뒤에서부터 등장해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연출이 인상적이며, 라퓨타의 메인 테마라 할 수 있는 '合唱 君をのせて (합창, 너를 태우고)'도 인상적이다. 마지막 곡은 오케스트라가 모두 퇴장한 가운데 고적대의 반주로만 이뤄진다. 합창이 이뤄질 때 무도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이 숨죽이듯 감상하는 자세도 또 다른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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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미야자키 작품들 중 하나인 1992년작 <붉은 돼지 (
紅の 豚)>이다. 특히 여기서 히사이시 조가 피아노 솔로로 연주하는 마르코와 지나의 테마곡은 지브리 사운드트랙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곡으로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번 공연에서는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와 더불어 섹소폰 및 브라스의 연주로 들려주고 있는데, 작품이 그러한 것처럼 성인 취향의 분위기가 물씬 나는 편곡이었다. 이번 공연에 <붉은 돼지> 관련 곡은 마지막 앵콜 곡을 포함하여 딱 두 곡 뿐인데, 마지막 엔딩 테마인 '때로는 옛 이야기를'을 들을 수 없어 살짝 아쉽기도 했다. <붉은 돼지> 섹션이 끝나고 나서는 스크린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자신과 예전부터 작품을 함께 해온 히사이시 조의 대한 감사와 추억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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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작품은 2004년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
ハウルの動く城)>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Merry- go-round'는 역시 지브리 사운드 트랙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테마이기도 한데, 오케스트라를 통해 만나니 더욱 웅장하고 후반부에는 박진감마저 느껴진다. 특히 왈츠 리듬의 '따라라라~ 따라라라~따라라라~라 라라라라라~'로 이어지는 후렴구는 언제들어도 행복해진다. 하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는 극 중에서 하울이 처음 켈시퍼를 만나게 되는 그 장면, 소피가 그 광경을 목격하던 순간에 흐르던 곡인데, 이번 공연에서도 바로 그 장면과 함께 만나볼 수가 있었다. 'Merry- go-round'는 피아노 솔로가 메인이 되어 다시 한번 들려주는데, 이 곡의 왈츠 리듬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몸을 가만히 있기 힘들 정도다. 극중 하울 목소리 연기를 맡았던 기무라 타쿠야의 목소리도 절로 떠오르고 그 공중을 걷던 장면도 생생히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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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은 2001년작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千と千尋の神隱し)>인데, 처음 만나게 되는 곡은 본래는 경음악 곡인 '어 느 여름날(あの夏へ)'인데 이번 공연에서는 히라하라 아야카의 보컬 곡인 '생명의 이름(いのちの名前)'으로 편곡되어 불려진다. 두 번째 곡 '또 다시 ( ふたたび )' 역시 본래는 경음악이었으나 히라하라 아야카의 보컬 곡으로 편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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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만나볼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대표작인 1988년작 <이웃집 토토로
(となりの トトロ)>이다. 하프 연주가 인상적인 '風 のとおり道 (바람이 지나는 길)'이 흐르면 어느 덧 무도관은 일본 시골의 어느 마을로 변해버린다. 다양한 코러스 파트의 합창이 돋보이는 'さんぽ (산책)'의 후렴구에는 지금까지 출연했던 출연진이 모두 무대 위에 등장해 합창으로 마무리한다. 이 곡이 끝나고 나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와 픽사 스튜디오의 존 라세터가 함께 토토로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영상이 잠시 나온 뒤, '토토로! 토토로' 하는 <이웃집 토토로>의 메인 테마곡이 연주된다. 토토로가 끝나고 나면 무대 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직접 꽃을 들고 나타나 히사이시 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데, 이 장면은 정말 뭉클해 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25년간을 함께 해온 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니 팬으로서도 뭉클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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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앵콜 곡으로는 히사이시 조의 피아노 선율이 인상적인 <붉은 돼지>의 삽입곡 'Madness'와 <모노노케 히메>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ashitaka and san'이 연주된다. 대단원의 콘서트를 마무리 하는 곡으로는 사실 조금 의외의 선곡이었는데(그래서 더 좋았지만), 차분하게 정리하며 마무리할 수 있어서 더 뜻 깊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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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영상으로는 메이킹 필름이 담겨있는데 2008년 8월 2일과 3일 가졌던 전체 리허설 장면을 만나볼 수 있다. 히사이시 조의 인터뷰도 만나볼 수 있으며,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소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공연 당일 이뤄진 출연진들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다. 이 역시 모두 HD영상으로 제공된다. 그 밖에 공연 중에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었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의 영상을 따로 감상할 수 있는데, 흥미로운건 이 작품들이 아직 블루레이로 출시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HD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는 거의 최초의 기회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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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아마도 스튜디오 지브리의 팬이라면 이번 히사이시 조의 공연은 그야말로 '꿈'같은 공연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함께 해온 지브리 작품들과 그리고 히사이시 조의 음악들과의 추억들을 되새겨 볼 수 있었던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으며, 무엇보다 다시금 책장에 꽃혀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DVD들을 꺼내보게 했던 매력적인 타이틀이었다. 아마도 이번 공연 실황 타이틀은 지브리 타이틀이 그러했던 것처럼 아무 때나 불쑥 꺼내어 봐도 언제든 행복해질 타이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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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아쉬타카 (www.realfolkblu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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